如土 고제순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고, 오스트리아 인스브르크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하여 대학에 출강하던 어느 날, 자신의 삶에 대해 강하게 회의 한다. 스스로 물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내면의 소리는 NO! 였다.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가? 심신이 지쳐있고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건강하지 않은가? 또 물었다. 무언가 잘못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자각이 섬광처럼 솟아났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는 식(食)생활, 주(住)생활, 의(醫)생활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매일 먹지 않고 살 수 없으며 쉬거나 잠자지 않고 살 수 없고 몸에 탈이 나면 치유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데, 이 세 가지 생명의 기초에 대해 홀로서기 능력이 전혀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참담함을 느끼게 된다. 그 후부터 그는 자신에 대한 박사라는 호칭을 거부하였다. 학위증이라는 종이 한 장이 입증하는 박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박사가 아니라는 자성으로 살고 있다.

  삶의 기초를 튼튼히 다시 세우기 위해 그는 대학 강의를 중단하고 몸과 마음과 영혼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였으며 식(食), 주(住), 의(醫)에 대한 자립능력을 기르기 위해 새로운 공부의 길을 걸었다. 삶의 대전환이었다. 그 후 약 십여년에 걸친 자연농업, 자연건축, 자연의학에 대한 공부와 연구를 통해 비로소 그는 생태적 농사꾼, 목수, 의사로 거듭났다. 이후 그는 철학을 ‘생명의 사랑학’으로 규정하고 생명철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2000년 가족과 함께 강원도 원주 근교의 회촌마을(박경리 토지문화관이 있는 마을)에 정착하여 흙집을 손수 짓고 살면서 몸의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였다. 그동안 그를 괴롭혔던 질병들이 치유된 것이다. 그는 그 후 병원이나 약국신세를 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2004년 어느 날 그는 몸소 체험한 이 좋은 흙집을 널리 전파할 목적으로 대안건축학교라 할 수 있는 흙집학교 흙처럼 아쉬람을 설립하여 19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흙집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약 5,000여명에 이른다.

  또한 그는 그동안 자신의 삶의 터전에 정성을 모아 크고 작은 흙집 20채를 지어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태적 흙집마을을 조성하였다. 몸과 마음과 영혼의 참된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생기 넘치는 쉼터를 제공하는 흙집 스테이 '여토산방'을 운영하고있다.